통일분과 자료실

2011/12/23 (13:52) from 61.76.184.212' of 61.76.184.212' Article Number :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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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2011, 마지막 소원

배우가 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느냐고 많은 사람이 묻는다
계기는 북한 아이들의 참상이었다

다사다난이란 말로 2011년을 다 말할 수 있을까? 사회 전반은 술렁거렸고 그 어느 때보다 그 많은 현상과 사건들이 내게 영향을 끼쳤던 해이다. 또 나 역시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사회적 이슈의 한가운데에 서곤 했다. 2011년이 시작되자마자 홍익대 청소노동자분들의 파업이 시작되었고, 그곳에 반찬을 싸들고 갔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일이 트위트로 전달되면서였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오지랖은 자꾸 넓어졌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배우가 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느냐고. 사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되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왜요? 안 되는 거예요?”라고. 사회의 일원이니까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는 거였고, 트위터라는 도구가 있으니까 내 생각을 말하기가 쉬워진 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일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사회문제,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 첫 시작은 4년 전 ‘어린이날 거리캠페인’에서였다. 드라마 <이산>에서 ‘정순왕후’를 할 때였고, 아시아에서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거리캠페인에 참석하면서였다. 캠페인을 마치고 많은 사례들에 대해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 아이들의 참상. ‘기아’가 아닌 ‘아사’의 상태에 내몰린 사람들. 설명만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 자신이 그 고통을 잊을까봐 단식중이시던 법륜 스님을 뵈었다. 48일째 단식중이셨고 여기저기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계셨다. 놀라웠다. 사람이 48일을 굶어도 죽지 않는구나. 저렇게 활동하고 말도 할 수 있구나. 그럼 얼마나 굶어야 사람이 죽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고 내친김에 굶어봤다. 5일째 되는 날 더는 견디지 못하고 미음을 먹으면서 눈물이 났다. 그 한 숟가락의 죽이 너무 따듯하고 맛있어서.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온몸이 괴롭던 증상이 그 한 모금에 싹 가심을 느끼면서. 죽는 순간까지 그 고통에 처해 있을 사람, 아이들 생각에 울고 또 울었다.

북한 돕기 또는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거나 얘기하면 늘 논란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주는 쌀을 먹고 우리를 위협할 거란 얘기다. 한쪽에서는 “종북,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뱉고, 또 한쪽에선 북한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다고,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이, 평양 외곽의 가장 약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깜깜한 어둠 어떤 빛도,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배가 고파 죽게 생겼을 때, 바로 옆에서 먹을 걸 쌓아두고도 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게 되어 있다. 선뜻, 생색내지 않고 먹을 것을 준 사람에겐 고마워하게 되어 있다. 무엇이 평화의 길이며, 무엇이 안보를 위한 길인지 ‘사람’의 마음을 놓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굶어 죽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평화외교’의 길임을 믿는다.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에 조의를 표한 것도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평화’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디 정부에서, 또 사회 곳곳에서 이 커다란 격변의 시기에 더욱 소외되고 잊혀질 북한의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인도적 지원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수많은 변수와 외교문제, 국내의 이견들, 현실문제들 속에, 가장 확실하고 ‘경제적’일 수 있는 평화 비용이라는 측면,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엄혹한 겨울을 나고 있을 때 외면하지 않았다는 명분, 그저 우리 맘에 적어도 사람을 굶어 죽게 하면 안 된다는 한 줄기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밥이 가 닿을 수 있기를. 2011년 마지막 소원으로 빌어본다.

  = 김여진 /연기자 ( 한겨레 세상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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